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기두스 전투 (문단 편집) == 전개와 여파 == [[에우게니우스]]와 아르보가스트는 [[헤라클레스]]의 상징을 군단기에 새기고 옛 전통에 따라 로마의 신들에게 승리를 기원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즉시 서로마군에 공격을 감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0,000명의 고트족과 바쿠리우스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단, 여기에는 로마군 본군이 아닌 껄끄러운 고트족을 일종의 [[형벌 부대]]로 써서 소모시키려는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의도였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당연히 에우게니우스가 이끄는 서로마군의 사기는 고조되었는데 이때 아르보가스트가 동로마군의 퇴로를 끊기 위해 분견대를 보내면서 서로마군의 병력이 분산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에게 승리를 기원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아르보가스트의 분견대를 기습했다. 이때 강풍이 불면서 서로마군의 대열이 무너지자[* 기독교에서는 '''신의 바람'''이 테오도시우스 1세를 도와 이교도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했지만 후대의 사가들은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아르보가스트는 패주했고, 첫 번째 날의 승리에 방심하고 있었던 에우게니우스는 동로마군에게 사로잡혀 처형당했다. 아르보가스트 역시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교도들을 격파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신속히 서로마 제국의 지배권을 접수했으나 4개월 후, 어린 호노리우스와 아르카디우스를 남긴채 붕어했다. 역사가 [[티란니우스 루피누스]]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이 전투를 [[밀비우스 다리 전투]]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승리라고 여겼으며, 기독교화에 대항하기 위한 이교도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교적 측면은 고사하고 에우게니우스의 군대에는 '헤르쿨리아니'를 비롯한 서로마 제국의 정예병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이는 결과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군사력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게다가 승자인 테오도시우스 1세가 오래 살았다면 모를까, 그가 이 전투 이후 1년만에 붕어하면서 서로마 제국을 맡게 된 인물은 훗날 라벤나에서 닭이나 치게 되는 호노리우스 황제였다. 결국 이 전투로 주력 부대가 괴멸된 서로마 제국은 고트족의 봉기, [[훈족]]의 도래, 게르만족의 라인 강 침공을 자력으로 막지 못해 '포에데라티' 같은 보조군에 의존하거나 게르만 부족과의 외교전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게르만족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하면서 서로마 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100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